좋거나 나쁜 동재
올드미디어는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고, 뉴미디어는 장인의 노련함을 신뢰할 때 빛을 발하는 작품이 탄생한 해였다. 이는 스타 창작자에 기대기보다 기획의 힘이 중요해지는 최근 드라마 업계의 추세와도 연관 있다. 1위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드라마 명가로 오랫동안 명성을 얻은 MBC의 2021년 극본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이다. 2022년 <씨네21> 올해의 시리즈 9위에 오른 4부작 <멧돼지사냥>의 송연화 감독이 연출한 첫 미니시리즈이기도 하다. 2위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LTNS>는 독립영화계에서 온 차세대 감독, <윤희에게>의 임대형 감독과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이 협업해 불륜 소재의 독창적인 블랙코미디를 탄생시켰다. 3위 tvN <졸업>은 안판석 감독의 구력이 CJ ENM 신인 창작자 발굴 프로젝트 오펜(O’PEN) 출신 박경화 작가의 가능성을 만난 작품이며, 4위 <대도시의 사랑법>은 동명의 원작을 쓴 박상영 작가가 직접 참여한 대본을 허진호, 홍지영, 손태겸, 김세인 등 4인의 신구 영화감독이 각기 재해석했다. 5위 <소년시대>는 2000년 SBS 입사 이래 꾸준히 드라마를 연출해온 이명우 감독과 <고령화 가족>의 김재환 작가가 쿠팡플레이에서 조우한 작품이다.
6위 <좋거나 나쁜 동재>는 “정의롭지 않고, 기회주의적이며, 신념이나 자존심을 지키는 것보다 자신의 안위가 우선인 검사 서동재를 내세워 주인공이 정의롭고 선한 인물이어야 한다는 방지턱을 넘는다”(복길). 한국 최초의 스핀오프 드라마로서 “<비밀의 숲> 시리즈에서 단편적이었던 서동재에게 입체성을 부각하며 스토리라인을 훨씬 풍부하게”(이자연) 만들며 “유쾌한 배반과 확장”(김소미)을 알리고 “다른 인기 IP의 콘텐츠 다변화, 세계관 확장”까지 기대케 했다.
밤에 피는 꽃
<밤에 피는 꽃>과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가 나란히 공동 7위에 올랐다. <밤에 피는 꽃>은 “퓨전 사극의 오락성을 극대화하며 남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지 않는 진취적인 여성상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박현주). “아이코닉한 설정, 막힘 없는 전개로 완성된 산뜻한 여성 액션”(남선우)으로서 “유교의 폐단과 악습이 낳은 가부장 괴물을 처단”(정재현)하는 서사가 “현재에 대입해봐도 전혀 해결되지 않은 가부장제와 여성 핍박의 역사를 조선시대로 돌아가 통쾌하게 그려낸”(김송희) 작품이다. “올해 가장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는 미스터리 스릴러” (정재현)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리더십 있는 연출과 촘촘한 대본 그리고 김윤석, 고민시, 이정은의 완급 조절이 살아 있는 연기”(이유채)가 조화로웠던 작품이다. “매치컷과 트릭에 기반한 편집 스타일과 친숙한 서사가 공존하는데, 거기서 불거지는 아슬아슬함”(김성찬)이 매력적이라는 평이다. 무엇보다 “올해의 캐릭터”(이우빈)를 다수 발견할 수 있는 기쁨이 있다. 이어서 “한국의 척박한 액션 드라마 장르에 한획을 긋는 매력적인 액션 쇼케이스”(김선영) <킬러들의 쇼핑몰>이 8위를 차지했다. “각양각색의 무기, 킬러들의 캐릭터, 장소 등 다양한 변수에 따라 계속 바뀌면서 한시도 지루할 틈 없는 액션의 재미를 선사”(김선영)한 작품이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
9위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은 독일 소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각색해 “한국인 커뮤니티가 가진 고질적인 문제들을 파고들며 로컬라이징에 성공”(복길)했다. 무고한 이를 범죄자로 만드는 서사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여성혐오 범죄를 비롯한 가부장 가족 체계의 부정적인 단면을 레퍼런스 삼아 먼 나라의 이야기 ‘한국화’에 성공했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오수경). 10위는 <선재 업고 튀어>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이 나란히 올랐다. <선재 업고 튀어>는 “전형적인 회귀형 웹소설을 바탕으로 팬과 아티스트와의 관계 그리고 운명적 첫사랑과의 관계를 각각 잘 그려내면서 복잡한 타임슬립의 플롯을 큰 의문 없이 받아들이게 한 각본”(박현주)이 매끄러웠던 작품이다. “불쌍한 영혼들의 ‘최후의 선의’로 가득한”(정재현)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상처 입은 이들이 서로를 구원하고자 애쓰는 존재라고 알려주는 ‘무해한’ 드라마”(오수경)다.
과소평가 시리즈로는 <정숙한 세일즈>가 꼽혔다. 영국 시리즈 <브리프 엔카운터스>를 각색해 “섹스를 고립시키지 않고 다른 권력, 문화와 연결시켜 재미있게 풀어낸”(김혜리) 이 작품은 “급진적이면서 사랑스럽고, 발랄하게 폐부를 찌른다”(남선우). “무자녀 기혼여성, 이혼한 여성, 비혼모가 모여 90년대 초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성인용품을 판매한다는 내용의 작품은 ‘시대극’이라는 설정을 통해 불필요한 트집들을 피하고, 통속적인 줄거리 곳곳에 시대를 초월한 페미니즘 어젠다를 배치해 여성들에게 은밀한 즐거움을 주었다.”(복길) 과대평가 시리즈는 “K드라마의 클리셰를 총동원한 과잉 진료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김선영) 같다는 평을 받은 <눈물의 여왕>이다. “계급과 지위가 절대적인 힘을 발휘”(복길)하는 박지은 작가의 드라마가 특히 이번 작품에서 “빈약한 서사와 사회적 고찰이 전혀 깃들지 않은 전개”(박현주)를 보여주며 “코미디를 만지는 솜씨가 현저히 하락”(진명현)했다는 혹평을 받았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선정 대상 기간 내 케이블, IPTV, 스트리밍서비스에서 최초 공개된 작품(한국 플랫폼 공개일 기준, 한국 프리미어) 중 최고의 해외 시리즈는 <베이비 레인디어>가 선정됐다. “스토킹 피해자의 시점에서 해부하는 자기혐오의 작동원리”(남선우)를 보여준 이 작품은 “이야기의 파편들이 살갗에 들러붙은 듯한 경험을 하게 한 잊기 어려운 강도와 자극”(진명현)을 남겼다. <베이비 레인디어>의 제작, 각본, 주연을 맡으며 올해 에미상 3관왕을 수상한 리처드 개드는 올해의 해외 시리즈 인물로도 호명됐다. “스토킹과 성폭력과 같은 경험에 노출되었던 사람들의 감정적인 트라우마를 당사자적 입장에서 사실적으로 다루면서도 이를 직접 전달하기보다는 극적 구성을 통해 보편화”(박현주)한 그는 “그 시절을 지독하리만치 집요하게 회고해낸 용기”(남선우)를 보여줬다. “단연 올해의 올라운더”(김선영)다.
2025년 기대작은 “강동원과 전지현, 김희원 감독과 정서경 작가”(이자연)가 조우한 첩보물 <북극성>이다. “와이어를 타고 내려오는 두 배우의 실루엣이 떠오르면서 얼마나 치명적이고 매혹적인 작품이 탄생할지 기대”(이유채)를 모으는 가운데, “정서경 작가가 쓴 대본의 여성 대통령을 배우 김해숙이 연기하면 어떨지”(최지은) 궁금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OTT가 활성화되면서 국내외 장르물을 섭렵했을 시청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남선우)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