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리뷰
퓨리오사 탄생과 기원 따라가
제로에 수렴하는 새 캐릭터들의 매력
퇴화한 액션신···'분노의 도로'에서 '분노'로'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서울경제]
"희망은 없어. 희망은 없다고!"
작품 속 디멘투스(크리스 햄스워스)의 대사처럼 액션 속에도, 캐릭터 속에도, 서사 속에도 희망을 찾을 수 없다. 무려 제작비 1억 6800만 달러(한화 약 2268억 원)를 쏟아부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프리퀄인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감독 조지 밀러)의 이야기다. 작품 내내 등장하는 헐벗은 황무지의 인간들 대신 실제 사회에 존재하는 전 세계의 힘든 이웃들을 돕는 것에 제작비를 보태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퓨리오사의 탄생과 기원을 따라갔으나...부실한 서사 =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전편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한 전사 퓨리오사의 과거를 다룬 프리퀄 작품으로 퓨리오사의 탄생과 그가 임모탄의 전사가 되고 이후 녹색의 땅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의 이유를 밝힌다. 하지만 전작과 달라진 배우들과 세계관의 기원보다는 무작위로 때려붓는 액션에만 치중한 신들로 인해 흥미가 떨어진다.
어린 시절 녹색의 땅에서 자란 퓨리오사는 자신의 땅 주위에 침범한 디멘투스 군단에게 납치당하고 이를 지키려 퓨리오사의 엄마가 뛰어들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디멘투스와 함께 황무지에서 지내던 퓨리오사는 디멘투스의 이익을 위한 타협의 담보로 임모탄(러치 험)의 제국에 넘겨지고 미래의 아내로 점 찍힌다. 가축처럼 임신을 해야 하고 기형아를 낳으면 버려지는 여성들을 보고 잔혹한 운명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퓨리오사는 임모탄 제국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꾸릴 채비를 시작한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각성 위한 '신파'에 고구마 지수↑ = 조지 밀러 감독은 작품의 챕터를 나눠 퓨리오사의 어린 시절, 납치된 이후의 삶, 탈출, 각성 등을 표현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조각보를 기운 것처럼 뚝뚝 끊어지는 시퀀스만이 존재할 뿐이다. 시간적인 흐름만 맞췄을 뿐 아예 다른 신, 배경, 등장인물들이 등장해 대사를 주고받으니 어떤 내용인지 파악하기 힘들 만큼 불친절하다.
생각보다 어린 퓨리오사(알릴라 브라운)의 분량이 길고, 불행으로 가득 찬 어린 시절을 그리는 동안 똑똑한 주인공들이 매 순간 최악의 선택을 하는 서사는 관객들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퓨리오사의 각성을 위해 소중한 사람들의 희생을 지나칠 정도로 자주 그리지만 너무나도 명확한 사망 플래그와 곳곳에 심어놓은 가족형, 로맨스형 신파는 결말이 예측되는 서사로 변질돼 흥미를 떨어뜨린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퇴화한 액션신...'분노의 도로'에서 '분노'만 남아 = 그렇다면 '매드맥스' 세계관의 중심이 되는 액션은 어떠한가. 워보이가 장대를 들고 차와 차 사이를 오가고 발할라로 가기 위해 자신의 입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자폭하는 충격 그 자체였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액션을 기억하는 자라면 이번 작품에서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업그레이드되기는커녕 강약 조절을 실패한 액션만이 즐비하다.
기존에 나왔던 무기들을 사용하나 새로운 무기들은 포클레인 집게 이외에 전무할 정도로 등장하지 않고 액션신의 비중도 크지 않다. 후반부에 다다라서야 드디어 가장 크게 강조해야 할 전투신이 벌어지지만 오감을 자극해야 할 클라이맥스에서는 뜬금없이 소음이 적어지고 내레이션이 나오며 전투 과정은 삭제되고 결과로 이어진다.
당혹스러운 포인트는 액션 영화보다 고어물에 가까운 신들이 다수 등장한다는 점이다. 작품 전반적으로 사람을 다양하고도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모습, 퓨리오사의 팔을 잃는 모습, 시체 먹는 인간들의 모습 등 구더기 하나하나의 생김새를 보여줄 정도로 클로즈업 돼 연출된 장면들이 등장하며 구토를 유발한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로에 수렴하는 매력" 서사 없는 새 캐릭터 = 가장 문제는 캐릭터를 향한 공감대와 애정도의 부재다. 퓨리오사의 과거를 보여주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워보이 눅스(니콜라스 폴트), 맥스 로켓(톰 하디), 스플랜디드(로지 헌팅턴 휘틀리) 등 적재적소에 등장해 서사의 흐름을 빈약하지 않게 채워주고 각자의 역할을 다한 인물들과 달리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메인 빌런인 디멘투스마저 매력이 제로에 수렴한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메인 빌런이었던 임모탄은 이번 작품에서 특별출연 정도로 모습을 드러내며, 반면 메인 빌런이 된 디멘투스는 퓨리오사의 엄마를 잔인하게 죽이고 어린 시절을 망가뜨린 장본인임에도 모든 행동과 대사에 전제가 없다. 그는 대사량과 분량만 따져도 퓨리오사보다 최소 2배 이상 존재감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영화 제목을 '디멘투스: 매드맥스 사가'로 바꿔야 할 수준이지만 그는 작품 내내 의미 없이 욕을 하고, 모독을 하고, 유머도 없이 비아냥거리는 말만 늘어놓는다.
지금의 디멘투스가 있기까지 빌드업이 됐었어야 할 디멘투스의 전사는 후반부에나 가서야 "자신도 가족을 잃었다"는 대사로 설명될 뿐이다. 그러기에 클라이맥스가 돼야 했던 퓨리오사의 복수 대면 신은 긴장감이 떨어진다. 퓨리오사와 쌓은 서사가 부실하기에 서로 하는 대화는 제자리걸음이고 보는 관객들도 지친다. 148분의 러닝 타임 동안 황무지 속 도로에서 가파르게 달렸으나 남은 것은 분노뿐인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기다리는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