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란 말이 있다. 미성숙한 아이들의 언행은 그들을 양육하는 가족, 특히 부모에게 강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가정교육의 중요성이야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겠지만, 제도교육에 선행해 부모의 훈육이 아이들의 인격 형성에 절대적 지분을 차지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테다.
종종 미성년 아이들의 분쟁이 부모들간의 극한 대립으로 치닫곤 한다. 대화와 소통으로 충분히 해결할 문제가 어른들의 감정싸움으로 파국을 맞고,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는 사례는 오늘날 미디어에서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지점이다.
이쯤 되면 아이들의 실수나 시행착오가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만든 어른들의 과실이 더 근본에 가깝다고 봐야 진단이 정확할 지경이다. 때로는 일이 너무 커져 재앙 수준으로 불거지곤 한다. <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는 그런 전형적인 예시에 해당하는 극화일 것이다.
텅빈 학교 건물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
▲ 영화 <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 스틸 이미지ⓒ (주)영화사 진진
'엘리자베스'는 6살 아들 '아르망'의 담임교사에게 연락을 받고 급히 학교로 향한다. 좋은 일은 분명히 아닌 것 같지만, 학교에선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주지 않는다. 만사 팽개치고 빗길을 운전하며 학교로 향하는 엘리자베스다.
같은 시각, 엘리자베스를 호출한 담임교사 '순나'는 교장, 선배 보건교사와 회의 중이다. 아직 젊고 경력이 짧은 순나는 지금 닥쳐올 사안에 대해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교장과 선배 교사는 그가 이 곤란한 과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 거라며 혼자 응대하길 권한다. 격려라기보단 어째 골치 아픈 일을 떠넘기려는 모양새다.
마침내 엘리자베스가 학교에 도착했다. 아이들이 하교한 초등학교 건물은 휑하고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순나가 어색한 표정으로 그를 맞이한다. 엘리자베스는 대체 무슨 일로 호출했냐며 캐묻지만, 잔뜩 얼어붙은 표정의 순나는 모두 모여야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며 얼버무리기만 한다. 엘리자베스로선 답답하고 짜증이 날 따름이다. 게다가 아직 오지 않은 다른 참석자들의 이름을 듣자 불길한 예감은 더해만 간다.
다른 참석자들이 마침내 당도한다. 엘리자베스의 아이와 동급생인 '욘'의 부모 '사라'와 '앤더스'다. 구면인 듯하지만, 그들 사이는 냉랭하다. 관계가 좋아 보이진 않는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엘리자베스와 달리 둘은 지금 상황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눈치다.
순나가 입을 열어 그들이 모인 이유를 설명하자 엘리자베스는 경악하며 그럴 리 없다고 외친다. 아르망이 욘에게 불미스러운 사건을 저질렀다는 정황이기 때문이다. 그걸 왜 사전에 언질을 주지 않고 이렇게 급작스레 이야기하냐는 항변에 순나는 자신 없는 표정으로 기계적 대응만 거듭할 뿐이다.
상황을 보다 못한 교장과 보건교사가 동석하고 논의가 이어진다. 엘리자베스는 뭔가 단단히 오해가 있다며, 설령 실제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자신이 들은 대로일 리 없다며 항변한다. 사라와 앤더스 부부는 이것저것 정황을 내세우며 물러서지 않는다. 오직 6살 아이의 진술만이 증거로 나온 건이라 학교 측도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편을 들 수 없지만, 어째 분위기는 아르망이 실제로 저질렀다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형국이다.
답답하고 화가 난 엘리자베스는 격한 감정을 드러내며 기행을 벌이고, 사라는 넌더리가 난다는 듯 그의 과거 전력과 허물을 교사들에게 강조한다. 보건교사 '아샤'는 갑자기 코피를 줄줄 흘리며 감독관으로서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한다. 교장은 학교가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단, 어떻게든 면피하는 데만 관심을 가진 듯하다. 순나는 누구 말이 맞는지 판단하지 못해 갈팡질팡한다. 하지만 욘 부모의 주장대로라면 적당히 끝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일은 수습 불능 지경으로 커져만 간다.
조여드는 긴장감
▲ 영화 <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 스틸 이미지ⓒ (주)영화사 진진
학원폭력을 논의하기 위한 교사와 학부모 모임에 불과한 상황 설정이지만, 영화는 폐소공포증을 유발할 정도로 극중 인물들은 물론, 화면을 응시하는 관객에게도 편히 숨쉬기 힘든 긴장을 몰아붙인다. 대개 밝고 화사하게 꾸며놓게 마련인 초등학교 건물이지만, 영화 속 배경인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운데 아이들이 없는 텅 빈 학교 실내는 마치 감옥 같은 질감을 물씬 풍긴다.
복도는 살풍경하고, 층계는 마치 빠져나갈 수 없는 나선의 미로처럼 그려진다. 너른 학교 실내에서 하필 좁은 회의실에 머리를 맞대고 모인 교사와 학부모들은 표정 하나도 놓치기 힘들 만큼 근접해 있지만, 그들의 가까운 간격은 결코 친밀감이나 상호이해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사건의 원래 당사자는 6살 동급생 아르망과 욘이지만, 정작 이들은 회의 현장에 동석하지 않은 건 물론, 이야기 내내 실제로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다뤄지는 존재들이다. 참석자 전원이 아이들의 심리상태와 후유증을 염려한다며 목청을 높이지만, 실상 이번에 터진 사건을 통해 원래 품고 있던 기울어진 마음의 그늘을 은밀히 혹은 분출하듯 드러내는 데 더 치중하는 모양새다.
엘리자베스만이 아들의 결백을 밝히고 자신을 포위한 채 압박하는 다른 이들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형세이지만, 그 역시 어디까지가 자식을 보호하려는 결기인지 상황을 유리하게 전환하기 위한 연기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초반에는 사건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실정에서 서로 자신의 아이를 신뢰하고 피해를 받지 않으려는 양쪽 부모의 공방에 학교가 팔짱을 낀 채 사무적으로 대하는 것처럼 상황이 그려진다. 교장과 감독 교사는 한눈에 봐도 이런 사건을 처리한 경험이 부재한 젊은 담임교사에게 책임을 넘기다 일이 커질 것 같으니 순식간에 태세를 전환하는 노회함을 선보인다.
사라는 엘리자베스에게 이전부터 악감정을 품은 형색이 역력하다. 그는 해당 사건과 엘리자베스의 흠이 될 과거를 연결해 마치 법정에 선 변호사처럼 학교 관계자들에게 정황을 확증으로 여기도록 부추긴다. 그런 일련의 언쟁 속에서 조금씩 인물들의 과거사가 밝혀지기 시작한다.
교장은 학교의 권위와 학생 보호 책무를 강조하지만, 수시로 격한 감정과 관료적 태도를 드러낸다. 사라는 교장에게 어필할 수 있는 과거 인연을 집요하게 공략하며 자기 입장에 유리하도록 상황을 조성하려 한다. 그런 반복된 행태는 관객에게 점차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자신의 아이가 겪은 피해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이걸 기회로 사이가 좋지 않던 엘리자베스를 공격하려는 저의가 뿜어지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너 잘 걸렸다, 이참에 끝장을 내버리겠다는 기세다.
그럴수록 뭔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진상이 감춰진 건 아닌지 의혹은 강화된다. 순나는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는 회의 탓에 긴장이 극대화하는 바람에 거듭 오락가락한다. 선배 교사인 아샤가 반복된 코피를 책임 회피에 활용하는 영악함을 보이는 것과 대조적인 양상이다.
엘리자베스는 자식을 지키고자 물불 가리지 않는 엄마 곰처럼 포효하지만, 그 역시 수난당하는 억울한 주인공이라 보기엔 이상한 구석이 한둘이 아니다. 배우라는 직업에 걸맞게 불리한 상황을 모면하고자 연기하듯 국면 전환을 시도하곤 한다. 때로는 사람들을 당혹하게 만들 극단적 감정변화로, 때로는 자신의 성적 매력을 어필하며 유혹해 지지를 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워낙 고립무원 상태이고 억장이 무너질 만큼 억울할 테지만, 과할 정도로 연극적 면모를 내비칠 때는 무의식적 거부감이 들 정도다. 이제는 영화 속 인물이 모두 선인과는 거리가 먼 피카레스크 구성이 아닌지 의심할 판이다.
미성숙한 어른들의 사투
▲ 영화 <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 스틸 이미지ⓒ (주)영화사 진진
영화는 꼼꼼하게 상황을 해설하고 단서를 제시하는 요즘 상업영화의 정답 공식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초반에 제시된 상황 설정은 정작 작품을 이해하는 데 별 쓸모가 없다. 그 공백을 파고드는 건 진실이 무엇인지 아무리 추적해도 다시 원래로 돌아가는 환장함의 도가니다. 누군가 진실을 호소하고, 다른 누군가는 이를 필사적으로 반박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그 공방보다 논란이 커지지 않게 얼른 절차만 끝내고 싶을 따름이다. 정작 부모와 학교의 책임은 뒷전이다.
아이들에게 끔찍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는사건 해결을 논의하러 모인 자리는 어느 틈에 과거의 악연으로 연결된 어른들의 복수극, 그리고 관료화된 학교 당국의 적당주의 폭로로 폭주한다. 보안을 유지한 채 논의되어야 할 해당 사안은 잠깐의 부주의로 금방 교직원과 학부모 사이에 퍼져 나가고, 여론재판의 병폐는 작은 사회에서 치명적으로 확산한다.
우화적 연쇄 구조는 사실적 묘사보다 표현주의적 상징을 강조하는 촬영 설정으로 극대화한다. 마치 <여고괴담>에서 귀신이 순간 이동하듯 튀어나올 것 같은 복도, 온통 회색빛 시멘트로 뒤덮인 건물, 집기가 뒤엉킨 채 뭐가 숨어 있을지 알 수 없는 지하실 계단 풍경은 라스 폰 트리에의 <킹덤> 시리즈 속 병원을 연상케 만든다. 아마 실제 학교 건물을 배경으로 활용했다면, 영화 속 공간과 실제 현실 풍경은 같은 곳이라 여길 수 없을 정도로 달라 보일 테다.
구체적 단서 대신 제작진은 초현실적 연출로 주인공의 복잡하고 불투명한 심리를 그리는 데 공을 들였다.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레나테 레인스베가 담당한 엘리자베스는 극 중에서 배우라는 직업을 살려 현대무용 요소를 활용해 잊지 못할 강렬한 장면들을 선사한다. 단지 연기 차력 쇼가 아니라 국면 전환의 분기점이기에 눈 크게 뜨고 바라봐야 하는 순간들이다. 플롯의 모호함을 배우의 강렬한 연기로 메우는 것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대체 엉킨 실타래를 어떻게 풀지 분간할 수 없던 심리극은 '데우스 마키나' 효과처럼, 대홍수 신화를 연상하게 만드는 극단적 분기점으로 천지개벽하며 국면을 뒤집는다. 다소 당황스럽긴 하지만 줄거리 서사보다 시각예술 효과를 극대화해 잊히지 않을 이미지로 승부수를 던지는 방법론이다.
그런 반전을 거치며 일단락되는 이야기는, 국경을 초월해 현재 각국에서 벌어지는 소통의 부재와 교육 불가능의 시대상을 몸서리쳐지게 상기시킨다. 아이들 교육 탓하기 전, 사회적 신뢰와 소통 부재가 치명적이다.
▲ 영화 <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 포스터 이미지ⓒ (주)영화사 진진
[작품정보]
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
Armand
2024|노르웨이|드라마
2024.12.25. 개봉|117분|12세 관람가
감독 하프단 울만 톤델
출연 레나테 레인스베
수입·배급 ㈜영화사 진진
2024 77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황금카메라상